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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김기덕 그에 대한 짧은 메모




새벽 늦은 시간 친구들과 영화 이야길 하다 집에 돌아와 무심코 핸드폰을 켰는데 김기덕의 수상소식이 눈에 들어왔다. 비공식 부분 3개의 상을 탔다니. 늘 있는 일이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를 보니 약30분 뒤면 본상 수상 소식이 전해질 것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난 그깟 삼십분 좀 더 버티다 자볼까 생각하며 그동안 쌓인 김기덕의 기사를 훑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되엇다. 생각의 중심엔 무엇보다 영화 피에타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영화를 본 뒤, 아리랑 이후 큰 변화가 일 것이라는 내 판단은 틀렸으며 오히려 감독님의 세계가 더욱 견고히 다져지는 정도의 영화였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전했다. 더 나아진 것도 없었다. ( 난 아멘은 보지 못했다. ) 굳이 달라진 점 이라면 편집 호흡이 상당히 빨라졌고 카메라의 움직임이 특정 씬에서 상당히 격렬하게 움직였다는 것 정도다. (엔딩 크레딧을 보니 감독님이 직접 카메라를 들기도 했던 것 같다.) 


대충 그런 생각을 하던 차 30분이 지났고 감독님의 황금사자상 수상소식이 인터넷을 타고 들려왔다. 물론 기뻤다. 축하드리고 싶다. 그리고 그를 처음 알게 했던 빈집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났다. 개인적으로 난 나의 세계가 아직 확고 하진 않지만 빈집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로 늘 구분짓고 살고 있다. 빈집이라는 영화가 그만큼 날 성숙시켰다고 생각했다. 그 어떤 고전의 영화를 보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영화 그자체의 힘과 프레임 안의 배우가 만들어 내는 소리없는 이야기와 떠도는 영혼을 카메라로 잡아내는 그 황홀경을 직접 경험하고선 이것은 CG로 버무려진 화려한 판타지 물 보다 더 환상적인 장면이며 이것이야 말로 진정 우리의 삶을 진실하게 그려내는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빈집을 본 것은 2007년, 물론 2004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3년이나 늦게 보게 된 것이다. 빈집의 DVD엔 감독님의 인터뷰도 실려있었다. 조금 충격적인 것은 인터뷰를 할 때 감독님이 참외를 깍는데 칼이 아니라 가위를 들고 껍질을 까고 계셨다. 준비된 의자 조명 아래서 인터뷰를 하는게 아니라. 문득 조촐하게 끼니를 때우실때 카메라가 다가간 것이다. 그것이 연출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난 영화 밖의 김기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 참 매력적이다. 그리고 빈집 이후의 영화들을 다시 보았다. 역시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김기덕의 다른 모습을 알게 되었다.   


3학년 마지막 학기 영화이론 수업시간에 파란대문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받은 충격은 빈집때와 비견할 만 하였다. 그 영화가 모든 것을 한방에 정리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앞으로 가야할 방향도. 이미 파란대문에 함축적으로 나와있었다. 그는 어찌보면 늘 같은 방법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빈집 이후의 영화를 다시 찾아 보게 되었고 파란대문에서 섬과 수취인불명과 해안선 빈집 활 숨 시간 등의 모든 영화의 느낌이 다 깔려있었다. 이것이 뿌리구나. 그리고 김기덕은 많은 영화를 찍으며 스스로 진화해 나가고 있던 것이 아니라 이미 그는 완성되 있었던 감독이었던 것이다. 정말 운 좋게도 파란대문을 늦게 감상하게 되어 기분이 좋았었다. 





졸업을 앞두고 간 프랑스 여행에서 현지에서 만난 교포를 통해 김기덕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당시 그러니까 김기덕이 그림을 그리러 파리에 왔을때 상당히 유명했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라고 물어보니 김기덕이 정말 거지처럼 길에서 자면서 생활 했다고 한다. 교포분은 거지처럼 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성공할진 꿈에도 몰랐으며 지금 현지에선 한국영화=김기덕으로 통한다고 하며 얼마전엔 한 극장에서 김기덕의 영화 회고전을 했다고 한다. 그것이 2008년 겨울 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영화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김기덕 감독님에 대해 폄하하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나처럼 그의 세계를 옹호하고 온전히 존경을 바치는 사람들은 드물었고 그저 괴짜 감독정도로 생각하는 정도였다. 어쩔 수 없다. 너무 영화를 예쁘게 만드는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최동훈 강형철 등이 있기 때문에 김기덕은 변방의 감독 정도로 생각하며 안 봐도 아쉬울 것 없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일 뿐이었다. 적어도 내겐 필견의 영화를 만들어 내는 대 감독이었지만 말이다. 


누구는 말했다. 김기덕이 모학교에 강의를 하러 왔는데 영화를 찍을 때 자기의 영화에 출연하는 여배우와 늘 잔다고 자랑처럼 말했다고. 난 납득 할 수 없었다. 잘 못 들은 거겠지 라며 다그쳐도 그 말을 직접 들은 여학생은 당시 그의 발언 때문에 혐오감이 치밀어 올라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상업영화 현장에 들어오니 더 심한 이야기가 나왔다. 김기덕은 자기와 잔 여자의 음모를 수집하여 모아둔다는 말이었다. 난 절대 사실일리 없다고 잡아 땟지만 역시 그에대한 이야기들은 변태스럽게 그의 영화속에나 나올 이야기들 처럼 포장, 재생산 되었다. 그런 놈이니까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것 뿐이다 라는 식인 것이다. 또 어느 술자리에선 서로 좋아하는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김기덕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며 옹호를 하는 내가 도대체 그 감독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하면 결국 그의 영화를 인정하지 않게 되는 낯간지런 순간도 경험하게 되었다. 


그의 삶이 어찌 됐든 그 모든 루머가 사실이어도. 난 그의 영화가 좋다. 어쩔 수 없다. 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모든 가쉽거리들을 마음속으로 섭렵했다. 하지만 언제서 부턴가 마치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 하듯 나도 김기덕을 부인하는 인상이 강해졌다. 그의 이름을 입밖으로 잘 꺼내지 않는 것이다. 함부러 말했다간 아... 너 그런 영화 좋아하는 그런 놈이엇어 라는 식의 얘길 듣게 되니깐 말이다. 그들이 뭐라든 내 알바 아니지만 참 영화의 취향으로 사람을 성격을 구분지으려 하는 것은 유독 김기덕의 영화를 말할때만 통용된다. 

 

대부분의 평론가나 영화학자들은 한국의 어떤 뛰어난 감독들도 성취하지 못한 예술적인 성취를 거두는 김기덕을 두고 쉽게 분석 해내지 못한다. 봉준호는 만화. 박찬욱은 인문학, 김지운은 장르영화, 최동훈은 영미소설. 각기 자신의 영화세계에 영감을 준 테제가 분명하게 자리한다. 하지만 김기덕은 다르다. 그는 영화광이 아니다. 책을 많이 읽지도 않는다. 공부를 열심히 한것도 아니다. 인문학적인 지식 그런거 없다. 다만 삶에 대한 예리한 시각과 통찰력이 있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이다. 무학의 통찰이랄까?...

 

초창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김기덕의 빈 자리를 도저히 언어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지점에 초등학교 졸업이니 공장 노동자니 하는 식의 대위법으로 그를 설명하려한다. 결국 그들에게 걸고 넘어질 것은 그의 성장 배경 말곤 없는 것이다. 이것은 김기덕의 영화가 그 영화를 보는 이들보다 한참 앞서있거나 차원이 다른 지점에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마도 그가 그림을 그리듯 영화를 그려낸다고 한다면 그림을 대하듯 영화를 대한다고 생각한다면 한결 사유가 편해질까? .... 뭐 그건 각자의 몫이다.


 

그의 삶도 존경할 만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 몇년 뒤 김기덕 감독님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 구셨다. 비몽 이후에 산속에서 칩거 생활을 하고 있으며 거기엔 장훈 감독에 대한 배신감이 한 몫을 했다는 것이다. 네티즌은 장훈을 개로 몰아갔다. 물론 영화계 안에서는 김기덕 감독님이 쇼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엄밀히 장훈의 의형제는 김기덕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영화라는 것인데 마치 자신의 아이디어를 프로듀서와 함께 뺏어간것 처럼 묘사를 해서 이슈화를 시키는데 그 의도를 모르겠다고 한다. 그건 팩트였다. 하루 뒤 김기덕은 사과문을 냈고 장훈 감독이 의형제로 번 돈의 일부를 풍산개에 투자를 했다는 이야기도 곁들였으며 후배가 상처를 받았다면 사과한다는 말도 덧 붙였다. 하지만 사건 이후에 제작된 아리랑에서 후배 감독들과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긴 하는데.... (죽이러 총까지 들고간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고 픽션이니 논외로 하자. 

 

이 모든 사건들과 정보는 사람들과 만난 자리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됐을 말....즉. 김기덕 영화를 좋아하며 한국에서 가장 영화를 잘 찍는 감독이라 주장해서 생겨난 일들이다. 조용히 있었거나 대충 이창동 좋아한다고 말하면 자연스러워졌을 대화 내용이 김기덕이라는 이름 하나로 엇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그는 참 근사한 술안줏거리 감독이었다. 그리고 지금 많은 예능에 나와 그러한 이야기는 전부 루머일 뿐이라고 일축하셨다. 난 그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의 삶을 존중하며 존경했으면 한다. 초졸에 공장 노동자에 책한권 읽지 않는 사람이 이정도 해 냈다 라는 것 때문에 말고.


16년동안 18편의 영화를 연출하고 3편을 제작한 그의 집념과 고집 끈기 때문에....


 

 

영화감독은 영화를 찍어야 한다. 

김기덕은 그 일에 한국 어느 감독들 보다 충실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