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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밀회 (Brief Encounter, 1945) 고전 멜로 드라마의 정점


      감독 : 데이비드 린




왜 우린 항상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영화의 첫인상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한다.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반복적으로 영화를 보게 만드는 것은 첫인상 때문인데. 이렇게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영화는 웬만하면 찾기 힘들기도 하다. 극장에서 밀회를 처음 봤을 때 상영이 끝난 후 영화를 다시 보게끔 하는 놀라웠던 지점은 물론 별 기대 없이 봤다는 것 말고도 이 영화가 4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선입견을 완벽히 무너트렸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모든 예상을 뒤집어 엎어버렸다. 


 30년데 시적리얼리즘 영화들에 대한 영향이 있었을지 아니면 세계대전에 대한 전쟁의 상흔을 숙명론적으로 표현한 것인지 나름 고민해 보기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전쟁이나 영화사조의 대입은 유치해 보인다. 이 영화는 전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헤어짐으로 그렇게 끝이 나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저 사람들의 평범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묘사한 것일 뿐이다. 


 두 번 째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처음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교배에 대해 관심이 갔고 분명 어딘지 모를 완벽히 다른 무엇인가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진정 스토리텔링이란 이런 것이 구나 라고 감탄하게 만든다. 과연 데이빗 린은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여주지 말아야 할지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난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보았고 감추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영화는 감동적으로 완성이 된것이다. 


 어쨌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리고 그런 감정이 차츰 발전하여 사랑이라는 단어로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는 건 고통을 항상 수반한다.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맹세하여도 세월 앞에, 수많은 상황 앞에선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물론 우린 인간의 사랑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 즘은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왜 우린 항상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나는 과연 로라의 사랑을 불륜이라고 말해야 하는 입장인가. 불륜이라는 정의는 어떻게 내려지는 것이며 또한 이 영화에서 말하는 한순간의 사랑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때 사랑은 긴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세월과 사랑의 경험은 그것이 절대 그렇지 않음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짧은 순간 마주쳤어도 사랑은 생겨나기도 하며 오래 같이 있다고 해서 늘 사랑이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영화 속 로라는 몸소 체험하며 그렇게 그녀는 밀포드 역의 휴게실에서 만난 하비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도 정말 우연히 석탄가루가 눈에 들어가면서 말이다. 



이 기이한 우연은 휴게실에서 시작되는데 휴게실 이라는 곳은 의례 그렇듯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공간이다. 누구나 오는 곳이기에 누구나 만 날 수 있다. 즉 서로 떠나가고 만나는 역의 휴게실은 그야말로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로라와..하비는 결국 잠시 만났다 헤어질 운명인것 처럼 말이다..

 

 사랑은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다. 사랑 그 자체만 있을 뿐이다. 때문에 어떻게 보면 로라는 가장 행복한 사람일수도 있다. 가정에선 귀여운 두 아이와 무심하긴 해도 나긋한 남편. 그리고 그녀가 반한 하비가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런 넘치는 사랑은 종국에 로라에게 죽고 싶다는 말을 꺼내게 만들어준다. 


 사랑의 선택, 하지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입장의 로라. 사랑의 과잉은 고통을 낳는다. 로라는 왜 하비에게 빠져드는 것일까. 답은 알 수 없다. 사랑을 정의내리기란 쉽지 않은 것처럼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에게 매력을 느끼게 한 것인지..스크린으로 들어가 로라에게 물어보지 않는이상..우린 추측만 할 뿐이다. 


로라는 그럴것이다.. "

 

"그때말아...그저 어느 한순간의 느낌만이 있었어. 우연히 식당에서 다시 만나 하루 동안 데이트를 즐기고 처음 만났던 기차역 휴게실로 왔을 때 난 하비의 야망에 대해 듣게 됬거든. 그 남자는 야망이 날 매료시켰지 아이같이 천진난만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자신의 분야에 대해 신이 나서 말을 하는 하비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천천히 빠져든다. 그리고 그녀자신 조차도 왜 자신이 갑자기 그에게 묘한 감정을 느꼈는지 알지 못한다. 


 결국 너무 솔직한 로라의 표정 때문에.... 서로간에 넘지 못할 선을 의식했는지....다음에 만날 것을 약속한다. 묘한 감정의 시작은 갑자기 다가왔다. 린은 이런 갑작스러움을 로라에게 카메라가 천천히 근접하는 숏을 만들어 내서 확실한 지점을 형성해 준다. 그리고 이 러한 카메라 워크는 몇 번의 반복을 통해 앞으로도 이러한 방식에 대한 대칭적인 적응을 요구한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로라의 나레이션으로 이루어진다. 마치 소설속의 여주인공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체험을 하게 된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말을 한다. 물론 이것은 실제적인 말은 아니고 남편 앞에서 하는 내적 고백이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고해성사를 한다. 아마도 자신의 사랑에 대한 잘못 이라기보다. 그 사랑이 있음을 남편에게 숨기고 거짓말까지 했다는 점에 있는 듯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로라가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옳은 선택이다. 


 40년대 영화이긴 해도 현제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지점이 그것이다. 지금의 우리도 누구나 바람피운 것에 대해선 무조건 함구하듯이.^^


 이 영화는 시대가 변해도 똑같은 인간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던 것이다. 촬영기법 역시 놀라운 지점이 있었다. 로라가 기차를 타고 가며 하비에 대한 상상을 할 때에 차창 밖으로 밤 풍경이 스치듯 지나가고 그 위로 로라의 상상물들이 떠오르는 장면은 너무나 실제적이고 누구나 충분히 경험 할 수 있는 이미지였기에 촌스러움보다 공감이 앞섰다. 이런식의 겹치는 장면은 로라가 나레이션을 시작할 때에도 사용되는데 쇼파에 앉은 뒷모습을 프레임의 아래쪽으로 따로 빼 내어 마치 그녀가 과거의 모든 모습들을 지켜보기라도 하듯 남편 프래디를 지워버리고 자신의 생각에 빠져 이야기를 시작하는 부분이다. 이런 이미지 효과는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사실 남편을 지워버린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다. 만약 그것이 뺄 수 없는 온전한 의미의 그림이라면 로라의 고백이 자기성찰 이상의 고해성사로 까지 이어 질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 나레이션이 끝나게 되면 쇼파에 앉은 로라가 먼저 등장하고 뒤이어 남편의 모습이 나온다. 홀로 무엇을 보고 온 것일까? 남편은 이 순간 그녀에게서 배격 당하게 되고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체 숨겨져 버리고 흔한 눈물로서 상쇄되어 버린다. 만약 모든 것이 로라의 상상이었다면 문제는 어떻게 바뀔까. 단지 이야기의 진행이 그녀의 입장이었더라면 우린 하비의 진심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프리카로 떠난다는 그는 로라에게 가정을 포기하라고 말은 못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아프리카행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로라는 이 순간이 죽고 싶다고까지 표현하지만 하비는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한다. 아마도 이것은 둘의 사랑이 아니라 로라의 상상이 만들어낸 그녀만의 로맨스는 아닐까 의심하게 만든다. 


 사실 되돌아보면 로라에게 지난 하비와의 일들은 일장춘몽이기도 했다. 다시는 자신에게 일어 날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순간이자 절대 잊을 수도 없는 순간인 것이다. 또 다른 장면인 하비의 집에 어렵게 들어가서 친구의 도착으로 도망 나오게 되는 장면은 마치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에서 영화초반 비오는 날 뛰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정말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인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빗속을 뛰어가는 여인의 뒷모습은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손을 잡고 싶게 만드는 충동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그녀가 말한다. 뛸 수 없을 때까지 뛰겠다고. 그리고 멈춘다. 몸의 열기는 상황이 주는 긴장감과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더욱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리고 눈물이 차오른다. 빗속의 로라는 그야말로 처량함 그 자체이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지만 그녀는 이미 집에 가길 멈추고 하비에게 간 상황이었다. 



둘의 만남..

수많은 데이트...

즐거운 순간들...

쌓이는 추억들...

그럴 수록 커지는 죄책감...

 결국.....


 하미가 떠난 다는 약속 날이 다가 오고 기차역 그들이 처음 만났던 휴게실에서.... 

 

 그들의 마지막 만남을 방해하는 달리와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이 이야기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음을 알게 된다. 달리는 영화의 처음과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카메라는 아주 천천히 로라를 향해 다가간다. 조명은 의도적으로 그녀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오로지 그녀하나만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은 마치 회상하는 현실의 로라가 직접적으로 과거에 투영된 듯한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즉 현실의 로라의 목소리가 과거의 목소리와 일치가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화의 엔딩을 알리는 절정의 순간이기도 하다. 죽고 싶기도 하며 누군가를 죽이고 싶기도 한 절대 절명의 순간. 아무것도 모른 체 모를 수밖에 없는 달리는 로라의 증오를 한껏 받으면서도 계속 주절댄다. 


 기차의 도착 소리와 함께 로라는 정신을 차리게 되고 이제 또다시 첫 장면과 겹쳐지는 불꽃같은 순간이 나타난다. 하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옷을 챙겨 나가면서 로라의 어깨위에 살짝 손을 올린다. 그리곤 살며시 힘주어 만지는 순간 그때의 모든 것들이 기묘하게 스쳐지나가며 모든 것에 방점을 찍어주는 마침표 같은 순간이 나타난다. 영화를 보는 관객에겐 환희의 순간이기도 하며 묘한 마법과도 같은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보시라.....


글은 조금 지겹더라도 이 마지막 장면은 꼭 봐주길 바란다...^^;




 수다쟁이 달리만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적어도 떠나는 그에게 잘 가라고 한마디라도 짧은 키스라도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달리는 오히려 로라에게 이성을 차리라는 듯 말을 놓지 않는다. 처음 휴게실에서 둘의 모습은 사실상 그 하나만으로는 어떤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의문 투성의 장면일 뿐인데. 첫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과 결합이 되면서 엄청나게 큰 층의를 가지게 된 것이다. 마치 내용물이 많은 샌드위치를 손으로 꽉 눌렀을 때 씹히는 맛이 야물 차듯이. 린은 옷갓 감정들을 하나의 숏으로 압축을 시킨다. 앞 뒤로 덮어버린다. 하비의 손동작. 중첩 되어지는 이미지의 반복은 강력한 의미전달을 한다. 물론 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어있는 시간과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광경을 정확하게 재현해준다. 


 로라가 떠나가는 하비 모습을 보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그들의 짧은 만남이 끝나려는 순간 흔들리고 동요되는 로라의 감정이 비틀어지는 카메라 안에 고스란히 담겨지며 인물의 감정과 이미지가 완벽히 일치가 되어버려 이미지 안에 흐르던 감정의 중력은 그 방향성을 정확하게 하비를 향하게 기울인다. 잔이 기울면 물이 쏟아지듯 로라의 감정은 쏟아지는 물과 함께 기울어진 프레임에 따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하지만 그 어느 때 보다 다급하게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뛰어 나간다. 넘치는 물은 휴게실 문을 박차지만 이미 하비는 떠난 뒤였다. 


 아쉬움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여기서의 프레임은 로라의 감정과는 조금 배격된다. 처음엔 감정과 프레이밍이 절묘하게 일치됐다고 한다면 마지막의 경우 여자는 더 감정을 올리고 싶지만 카메라가 강제적으로 그 감정을 사그라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적인 효과가 인물의 감정을 상쇠시키려고 한다니 이 얼마나 멋진 순간인가?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테크닉에 대해 입을 쩍 벌리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럴 듯한 이야기만 전달하고 끝나겠지 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함은 린에게 한방 먹은 것이다. 프레임을 비틀거나 조명을 활용하고 사람을 미장센으로 두기도 하며 중쳡된 이미지들의 힘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인물이 지나간 자리를 남겨두는 여유 거기서 나오는 알 수 없는 흔적의 힘.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로라의 나레이션으로 완벽하게 구성된다. 기차에 뛰어들어 죽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은 프레드와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 였다고. 


 이 순간 사실 내가 앞서 해왔던 모든 고민들은 사라지고 만다. 앞 뒤 사정이 어쨌건 로라는 진심으로 하비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녀도 죽음 앞에서는 한걸음 뒤로 물러 설 수 밖에 없는 인간인 것이다. 세계대전의 혼란기속에서 당시의 관객이 죽음에 대해 가지는 생각은 어쩌면 삶 속에 늘 가지고 있는 두려움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면 반대로 그 찰나의 사랑에 너무나도 쉽게 죽음을 말하는 로라의 모습은 죽음이 자신의 언저리에 항상 도사리고 있고 때문에 그것의 선택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한 개인을 통해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랑이라는 감정을 정말 섬세하게 묘사한다. 사용된 나레이션 기법은 정말 누군가의 고백을 옆에서 듣는 것처럼 여성 내면의 어떤 심층부를 느끼게 해주기도 했으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조명효과나 프레임을 비트는 방식같은 경우 지금 누군가 스타일을 그대로 들고가서 자신의 영화속에 집어넣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장면이었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뻔한 내용으로 비춰질수도 있지만 그 뻔한 이야기의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느낌은 확실히 달라진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볼때 요즘은 스타일에 천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야기 보다 스타일이 우선시 되는 때론 스타일만 있는 영화들을 선호하기 시작한다. 


 밀회는 표현방식이 이야기를 살리는 좋은 교본 같다는 생각도 든다. 흔한 나레이션을 이미지와 교묘한 대칭을 이루게 하고 위에서 말한 이야기의 처음과 끝의 대칭함으로 단순한 반복 그 이상의 강렬한 느낌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문득 시간이 지나고 결혼을 하고 다시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로라의 마음을 그리고 하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


누구든 운명이 그렇게 만든 다면 모든 걸 포기하고 잠시 만난 누군가를 따라 떠날 수 있을까? 


 길든 짧든 사랑은 사랑이지만 인간이기에 지켜야할 것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니까..그러진 못할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프레디와 같이 모든걸 이해해주는 마음좋은 배우자가 옆에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로라의 남편...프레디 만큼은 정말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어쨌든 린은 유부남 유부녀가 아닌 남자와 여자의 ‘짧은 만남‘ 그 밀회를 훌륭하게 표현해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