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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뒤집어진 새끼 거북이의 연말정산

21년 한해 동안 준비하던 대본이 결국 무산이 되어버렸다.

독특한 기획물이었고 대본이 재미있다고 배우들도 붙었으며

굴지의 후반업체가 뒤에서 서포팅해주어 컨셉 아트까지 나온 상황이었다.

넷플과 티빙이 타깃이었는데 정말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긍정의 화신인 감독은 경력이 미천한 자기 때문이요

회사는 우리가 신생이라 힘이 없어 그렇다며 나를 위로 했지만

난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더 재미있게 쓰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선지 22년 시작은 참으로 우울했다. 

뭘해도 안되는 시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정말 난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왠지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 기분은 뭘까.

2월즘 학교 후배의 소개로 단편영화을 준비하며 4월에 촬영을 마쳤다.

간만에 현장에 나가 연출을 하고 있자니 엄청난 힐링의 시간이었고

결과물도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3월 큰돈을 준다는 게임회사와 지지 부진하게

거의 5개월을 계약건으로 끌다 싸인 직전에 포기해버리자 큰돈이 날아가며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연초에 아버지에게 받은 결혼자금 수억을 주식과 코인에 때려 박았다가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어 버리자 난 더욱 무너져 내렸고 여자친구와 싸움도 잦아졌다. 

그 주식과 코인은 12월 현재 미친듯이 더 하락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5월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공모전에도 운좋게 붙었지만 들어가고 보니

함께하는 작가들의 수준이 너무 높아 내가 초라해지는 기분에 며칠을 앓았다.

7월 두번째 코로나에 걸려 어머니를 힘들게 했고 여친과의 제주도 여행이 파토났다.

9월 운좋게 편성이 확정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지만

제작사는 귀찮아 하고 방송사는 엎으려 하고 감독은 빨리 찍고 딴거하려 하고

나만 외로이 섬에 갇혀 글을 쓰고 있다.

10월 영화제에 가서 평소 만나고 싶었던 감독님과 친해졌고 영화도 많이 봤다.

무진장 낯가리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이렇게 친밀하게 놀 수 있었다니 신기했다.

그리고 11월 전 여자친구는 결혼과 출산 소식을 동시에 알려왔다.

도무지 그런 메일을 내게 보내는 이유가 뭔지 불쾌했다.

빡쳐서 쓴소리 가득담긴 답장을 보내줬다.

12월 31일까지 4개의 대본을 넘겨야 한다.

만약 이번에 설득을 못시키면 아마

얻어 걸린 이 기회도 나가리가 될 것 같다. 젠장......................

글을 써야 하는 이 시간 너무 안써져 연말정산을 해봤다.

 

미래. 두려움. 설레임. 어디에도 희망은 없어 보인다.

침침해지는 눈과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과 지끈 거리는 허리. 불편한 어깨. 

영화가 원망스럽다. 

언제든지 영화를 하는 것보다 더 즐겁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 있다면

짐싸들고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버티면 어쩌다 방송도 되고 어쩌다 개봉도 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데뷔한다 해도 난 달라지는 게 없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든다. 멈춰있다. 상상력 필력 모든 것이 정체되어 있다.

더 성장하고 싶은데  뭔가 날 막고있는 느낌이다. 

그건 내 자신이다. 한계가 있다고 느껴진다. 

더 잘하려해도 그 이상은 안되는 명확한 나의 한계.

그래, 재능 없이도 여기까지 왔다면 잘한거 라는

자기 최면도 이제 안먹힌다. 

이런 넋두리를 쓴소리 잘하는 친구에게 말하자

너라는 사람이 재미 없는데 어떻게 니 글이 재미있겠냐 한다.

맞는 말이다.

주변에 함께 작업하는 수많은 작가들의 글을 보면

진짜 지 생긴대로 쓴다. 거짓이 하나 없다. 지금 나의 상황이 그렇다. 

정말 대본 회의때면 긍정적인 이야기를 단 한마디도 들을 수 없다.

너무 짜증이 나서 부정적인 얘기 다들 그만하시고 장점을 말해달라 해도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날의 회의는 정말 최악이었다. 

난 그런 작가다. 그것이 나의 현실.

나를 항변하기 위해 목에 핏대를 높이는 체력과 의지가 있다는 사실에 그냥 조금 놀랐을 뿐

결국 난 기도하고 은혜를 구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여기가 끝이구나...

하나님은 내가 작가가 되든 뭐가 되든 관심없다는 것도 안다.

그저 하나님의 품안에서 감사하면서 죄 안 짓고 십자가 복음 전하며

희생하며 섬기며 살아가는 그 과정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지금의 뒤집어진 새끼 거북이 같다. 

하나님의 손길이 없으면 바다로 못가고

모래위에서 말라 비틀어져 버릴 것이다.

다가오는 23년 난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로 나가고 싶다.

그 목표를 세우자. 돈이니 일이니 꿈과 희망 어쩌고 쓸데 없는 것들

결국 죽으면 다 없어지는 것들 말고 영원한 생명을 붙들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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