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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친구를 떠나 보내며

정신없이 글을 쓰며 마감을 달리던 때

문자 진동이 울렸다. 

단체문자.

친한 후배 아버지 부고 문자였다.

스트레스 받는 하루 

요즘들어 부쩍 잦은 부고문자에

내용을 자세히 읽지 않고 계좌로 조의금만 보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후배와 따로 만나 밥한끼 해야겠지라며...말이다...

시간이 3일 정도 흘렀다.

동기와 연락을 하다 혹시 후배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냐고 물으며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내가 받은 문자는 부친상이 아니었다...

본인상이었다.

난 믿들 수가 없어서 문자를 다시 봤고

정말 부친상이 아닌 본인상임을 확인했다.

1년 6개월의 암투병 끝에 ... 그렇게 되었다는 내용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할 수 있었던 것일까.

난 누군가의 죽음 앞에 아무렇지 않은 듯 

대충 문자를 읽고 돈만 쏴보내고 할일 다 했다고 생각했다.

그 후배가 죽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엔 한 오해라...

생각하려해도 이건 무심을 너머 고인에 대한 아무런 예우도 없는

인면수심 ... 파렴치한이라 느껴졌다.

그가 나와 함께 한 작품이 4작품이나 되었다.

9편 정도의 단편을 찍었는데...

그 절반을 함께 해준 녀석이었다.  

졸작은 주인공이었지만 그 뒤로는 비중있는 역할을 주지 못했어도.

늘 부탁을 하면 어떤 역할이든 최선을 다하려고 했던 그런 친구 였다.

그는 연기에 대해 창의적으로 연구했고 늘 발전하고 생각이 깊어져 갔다.

어떤 때는 함께 작품을 만들어 보자며 사람을 소개시켜 주기도 했고

가끔 집 앞에 찾아와 커피를 사주며

연출을 하고 싶어 시나리오를 썼는데 어떤지 봐달라 했고

수개월이 지나 그 시나리오로 가르치는 제자들과 단편을 찍었다며

느낌이 어떤지 코멘트를 부탁하기도 했고

때때로 전화를 걸어와 최근 출연한 영화들 드라마들을 통해 겪은 이야기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하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취향이 너무 비슷한 탓에 누구보다 말이 참 잘 통하는 친구였다.

그런 생각이 무르익으며 점점 내 자신이 무너져 내리고 있을때...

불현듯 또 한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와 마지막으로 연락을 한게 언제인지... 기억이 났던 것이다.

그 친구는 내게 몸이 아프다고 전화를 했었었다.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암에 걸린 것 같다고

난 그때 회의를 하러 가는 2호선 지하철 안이었고

엄마가 유방암에 걸렸다 나은 이야기 

친구가 갑상선에 걸렸다 나은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괜찮을거야...걱정하지마...이따위의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녀석은 상당히 지친 목소리로 그게 아니라고...

뭔가 더 말을 하고 싶은데 아끼면서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녀석 나한테 왜 이러지? 너무나도 평소와도 다른 모습에 

당황했던 그 기억이 문득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난 알고 있었다. 그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걸

그때도 난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했다.

설마 젊은애가 그럴라고... 그렇게 건강해 보이던 네가... 그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그 문자를 보고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본인상을 부친상이라 읽어버리는 정신 나간 짓을

해버리고 말았다. 

난 그 친구가 가는 마지막 길을 배웅하지 못했다.

나밖에 몰랐고 내 일이 바빴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었다.

생각하보면 난 내가 필요할 때가 아니면

그 친구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다.

늘 그녀석이 내 생각이 난다고 연락을 해온게 그게 우리 둘 사이의 전부였다.

난 왜 그렇게 살았던 걸까... 누군가에게 받은 고마움이 있다면

응당 보답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왜 이렇게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걸까.

주변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고 나만 보고 살아가는 걸까.

내 삶에 대한 총체적 문제... 도무지 이렇게 살면 안될 것 같은 

자각이 된다.

그에게 너무 미안해 죽을 것만 같다...

그 친구와 나눈 대화들 받았던 좋은 감정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좋은 영화를 찍게 해준 너무 고마운 나의 동료이기 때문에..

그립고 보고싶다. 

내 후배. 정원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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