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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악녀> 액션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악녀를 보고 왔습니다.

 

칸에서 무척 주목을 받았고 

액션에 조예가 깊은 정병길 감독의 작품입니다.

보통의 상업영화 예산에 준하는 돈으로 만들어졌다고 들었고

기사를 보니 확실치는 않으나 해외 판권 팔아서 이미 본전 가까이 뽑아 놓은 것 같더군요.

8일날 개봉인데 결과가 어떨지 궁금합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분위가 무척 어둡고 무겁습니다.

액션은 화끈 거리면서 동시에 습한느낌이 드는데 영화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룹니다.

낮장면도 의도적으로 톤 다운 시켜서 색을 돌린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물론 액션은 뭐, 그간 한국에서 본적없는 액션임은 분명합니다.

<하드코어 헨리>가 많이 생각이 났습니다...카 액션에서는 감독의 전작들도 생각났습니다.

정말 오지게 액션 치고박고 합니다. 하지만 카피 처럼 '액션 마스터피스'인지는 물음표입니다.

문득 또 하나의 액션거장 류승완이 이영화를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기 까지 하더군요.

 

류승완 감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둘의 차이가 있다면, 류승완은 스토리를 받쳐주거나 혹은 극의 전환장치

그리고 인물들의 정서를 완성시켜주는 쪽으로 액션을 활용했다면

정병길은 액션 그자체의 호흡으로 보편적이며 단일한 감정인...

분노, 복수, 증오 등을 증폭시키기 위한 툴로써 다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액션시퀀스에 전부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그림을 만들어내기 위한 납득하기 어려운 동선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을 무리하게 확장 시키는 규모의 액션이 다소 과하게 작용되는데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특히 공간 확장 혹은 장면 전환을 위한 '창문 깨고 돌진하기'가 너무 반복됩니다.

뭐, 그럼에도 이런 것을 즐기는 관객이 있겠죠....

 

정리하자면 류승완은 액션만을 위해 영화를 찍은 적이 없는 느낌이고

정병길은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이야기가 없으면 흥행하기 힘듭니다.....

 

어쨌건...

 

악녀, 전반적으로 장면들이 정제되어 있지 않은 날것의 느낌이 많이 나고

감독이 의도적으로 고전적이며 자연스러운 예쁜....샷바이 샷을 거부하는

독특한 장면, 컷 전환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림들이 뭔가 새롭긴 합니다.

하지만 어떤 장면은 딱봐도 편집실에서 억지로 만들어낸 샷들도 보입니다.

액션이나 촬영본의 실수등을 감추기 위한 스케일 확대도 너무 빈번히 일어납니다.

정제된 샷들을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그런 장면들이 눈엣가시일 듯 합니다. 

 

그리고 스토리에서 한가지 거슬리는 것만 얘기해보면

 

투 트랙의 멜로라인이 있는데.

첫째로 옥빈과 방성준의 멜로라인입니다.

 



성준, 그는 뭐랄까 드라이브의 라이언 고슬링 냄새를 많이 풍깁니다.

얼굴 자체가 아주 그냥 나 멜로 배우에요 라는 느낌이 납니다.

그리고 한때 국민 첫사랑 수지의 전 남친으로 능력자임을 감안할때..

등장 자체로 오는 몰입도가 있습니다.

(이민호랑 사귀는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저만 그러겠져? ㅋㅋ)

 

하지만 도무지 극중에서는 꿍꿍이가 뭔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방성준이 어떤 인물인가, 이런 놈이 어쩌다 옥빈이를 사랑하게 되었나. 

단독 씬을 몇개 줘서 그려냈어야 했는데 그런 장면들이 없어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아주 무책임한 처사입니다. 뒤에가서 옥빈을 엄청 좋아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시작이 애매하게 떨어지니까 갈수록 난맥을 형성합니다.

물론 그나마 방성준의 개인기인 눈빛과 목소리 때문에 살았던게 감독에겐 천운입니다.

 

또한 이런 잔인한 영화의 톤에 이정도로 많은 멜로 플롯을 짜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속에 방성준의 순수하고 착한 사랑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 성격의 남자가 국정원이란 집단안에서 킬러를 양성해 내는 일을 한다니

뭔가 인물의 감정과 영화적 배경에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두번째, 신하균과의 러브라인은 다소 구체적이고 구구절절합니다.

상당량의 플레쉬백으로 신하균을 소환시키고 옥빈의 어린시절을 탐닉합니다.

그러나 방대한 장면의 나열에도 불구하고 하균과의 멜로 라인에서도 

이번엔 옥빈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김옥빈의 캐릭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나 쉽게 수십명의 사람들을 찌르고, 쏘고, 썰고, 조르고, 자르고 아주 화려하게

죽여버리는 캐릭터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수한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줄땐

그에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옥빈에겐 그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합당한 모티브도 모먼트도 없지만... 

옥빈이 어딘가를 향해 계속 달려가는 걸

그냥 넋을 놓고 보게 되는 힘이 있습니다. 

복수에서 시작해 사랑을 하다 다시 복수로 끝나는

한여자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결국 느끼게 됩니다.

다른 서브 케릭터들은 몰라도 옥빈에게서 만큼음

남성의 사회에서 어렵게 버텨냈던 여성에게 바치는 레퀴엠 같은 느낌까지 듭니다.

그래서인지 옥빈이 그려내는 숙희라는 케릭터는 쓸쓸하고 외로운 여성입니다.

이미 죽어버린 시체의 울부짖음 이랄까요...

 



결국 이 영화는

 

오로지 사랑밖에 모르는 한여자의 쓸쓸한 인생을 그려낸 '액션멜로영화'라는 겁니다.

 

옥빈이가 아니었음 누가 이 영화를 찍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생했다 옥빈아.

300만은 힘들 것 같지만

칸은 갔다 왔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