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ilm

<이미테이션 게임> 중심을 잃었는데 아니라고 거짓말 하기.


연출을 맡은 모튼 틸덤 



<이미테이션 게임> 을 관람했다. 주변 지인들의 칭찬 릴레이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영화는 내 취향과는 조금 다른 노선을 보여주었다. 재미있게 본 사람들이라면 굳이 나의 글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난 이 영화가 튜닝 박사의 일대기를 보여줌으로 한 인물을 통해 어떻게 전쟁이 묘사 되는지가 관건이었다고 생각한다. 시대는 늘 인물을 통해 묘사가 되기 마련이다. 때문에 이 영화가 주는 미덕은 있다. 외톨이 천재. 동성애자가 종전을 2년이나 앞당겼다는 것이다. 늘 보아온 영웅 처럼 애국주의자며 희생정신으로 무장한 류의 인간이 아니다.(덤으로 잘생기기까지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영화의 매력은 그것이다. 숨겨진 역사, 그 진실은 사실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직면해야 할 진실이라는 것. 영화는 자연스럽게 튜닝을 자랑스러운 한 인물로 충분히 연민을 보내야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영화가 보여줘야 하는건 결국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제시다. 그래야 현제를 재단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더 나아감으로 실수를 범하고 만다. 


그 더 나아감...방향 제시가 어떻게 되니냐에 따라. 감독의 관점 세계관이 드러나고 관객은 영화를 보고 호불호를 가리게 될 것이다. 본 영화는 영화의 기술적 면에선 무난한 면을 보였다. 필름으로 촬영했고 적절한 다큐 풋티지를 삽입하여 실제적 느낌을 강조하려 했으며 장르적 관습안에서 극정 장치들을 곳곳에 배치 했고 케스팅도 모든 배우들이 적격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기술적으로 완성도 있는 영화가 욕을 먹어야 겠다면 먹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난 이 영화에 동성애 코드가 왜 강조되는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튜닝박사의 본 모습이 그러했다고? 그럼 거기까지만 보여주면 됐다. 사실 이영화는 이미테이션게임이란 탈을 쓴 동성애 영화다. 극중 주인공들 처럼 감독은 우리에게 구라를 치고 있다. 그 방점은 마지막 엔딩자막에서 드러난다. 왜 거기까지 동성애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했을까. 왜 영화는 두개를 동시에 말하고 싶었을까그렇기 때문에 정작 영화가 말해야 하는 주제가 거덜나 버린다.  주인공이 언제 죽었는지 그가 이룬 업적이 현제의 우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것만 말하면 됐지 동성애자들이 얼마나 피해를 보고 사는지 자막으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왜 이렇게 지랄을 하냐면 얼마전 본 영화 때문이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역시 마찬가지다. 이스트우드 할아버지가 죽기전 제대로 자신의 본 모습을 영화로 드러냈는데 그는 대놓고 골수 공화당 지지자의 순도 100% 미국영화를 만들어 냈다. 그에겐 심지어 전쟁을 통한 미래지향적 관점 따윈 없다. 현제 우리가 이들로 인해 국가를 지켜내었다는 식의... 우린 앞으로도 이러할 것이다. 라는 아주 단순 명쾌한 답을 내라고 끝나 버린다. 이라크전은 이미 베트남전 처럼 그 병폐가 수면위로 완전 드러난 미국의 침략전쟁이다. 미국은 오랜 기간동안 중동에 무기를 팔아먹으면서 수익을 얻었고 암암리에 독제국가를 지지 했으며 유대자본을 통해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셀수도 없이 많은 이슬람인들을 죽여왔다. 삼천일 동안 한 명씩 사람을 죽이는 것과 하루만에 삼천명을 죽이는 것의 차이가 있을까? 사람의 수가 범죄의 가중 여부를 결정짓나? 아니 올시다. 삼천명은 9.11테러가 일어나고 죽은 사람의 수다. 하지만 그동안 미국이 죽인 사람들은 수만명이다... 


모든 전쟁은 미국이 자처한 전쟁이다.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것인 양 국민들을 선동해서 전쟁이 불가피한 것 처럼 포장할 뿐이다. 이 세상에 미국처럼 파렴치한 나라도 없다. 모든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 하지만 미국은 그 위격이 다른 나라와는 달라 작은 행동에 한국가가 휘청일 정도의 파워가 있기에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 많은 민족이 함께 살아가는 지구라는 공동체 안의 미덕인 것이다. 



브레들리 쿠퍼

영화적으로는 훌륭했으나 본질에 다가서지 못해 너무나 안타까운 영화.


자,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만약 튜닝 박사가 아동성애자였다면 영화는 그를 어떻게 묘사했어야 했나? 이것은 당시에 동성애와 같은 범죄였다. 그럼 당시의 모습 그대로 묘사했을까? 그랬다면 현대의 관객들이 허용했을까? 아동성애자는 중범죄자다. 지금도. 정신적 치료를 필요로 할 수도 있겠지만 동성애와는 완전히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당시엔 성적 대상으로 아동, 동물, 동성등이 동일하게 범죄였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 윤리에 자연의 섭리에 배격되기 때문이다. 지금 영화가 제작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받아 들이는 동성애자들이 성적 소수자로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확고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동성애는 정신적 치료를 필요로 하는 정신병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영화처럼 무식하게 호르몬 치료를 한다던지 하는 것은 인권유린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는 그들은 지켜줘야 한다. 동성애자라고 차별을 받는다면 난 그들을 지지한다. 동성애는 성적 취향이 아니라 병이이기 때문이다. ADHD가 있다고 차별을 하나? 치료를 하려 할 것이다.(영화의 예처럼) 알러지가 있으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난 그것과 동성애가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일종의 트러블이다. 병적인 트러블 말이다. 단 이것이 현대사회에서 범죄시 되지 않는 것은 그들이 궁극적으로 일반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잠자리를 동성끼리 한다고 우리가 피해보는 것? 없다. 그렇기 때문에 좌시하는 것이다. 아동성애가 왜 범죄가 되나? 성적으로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그것은 엄청난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씻어낼 수 없는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인 것이다. 동성애가 보호 받는건 단하나다 결국 서로 합의하에 섹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없다.  


이것은 큰 문제다. 




요즘의 영화는 모든 동성애자들을 옹호하고 있다. 말했지만 나 역시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동성애 역시 반대한다. 동성애 결혼합법화? 반대한다. 그것은 동성애를 장려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동성애를 장려하지 않듯이 동성대는 장려의 대상이 아니다. 동성애를 취향이라고 말한다고? 대상의 종류를 가지고 취향이라 말한다면 아동성애도 수간도 취향이라 생각하는 것을 반박할 수 없다. 우린 신기루를 뒤집어 쓰고 산다. 언론과 TV 문화 속에 심취해 있으며 누군가 한 목소리를 내면 그것이 맞다 생각하고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 세상엔 옳고 그름에 대해 명확히 말 할 수 잇는 것은 정말 극히 드물다. 윤리의 문제...한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유행했든 그 질문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관점과 대상과 경험과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이 세상이다. 나의 생각을 반박 할 수 있을 것이다. 편협한 시각이라 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의 근원은 이것이다. 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남자와 여자. 생명의 탄생. 인류의 보존. 그것은 불변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모든틸덤 감독은 영화 속에서 동성애를 지극히 옹호하는 발언을 하며 마치 그들이 보상 받아야 하는 피해자이며 억압했던 인류의 과거로서 전쟁 승리에 빗대어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 처럼 씻어내고 반성하며 변해야만 하는 것인냥 말하는 엄청난 거짓말을 관객에게 한 것이다. 


난 감독이 벌이는 이미테이션게임에 질 수 없다. 그래서 버틸 것이다.

   

튜닝박사는 말한다. 내가 기계인지 사람인지 맞춰보라고. 난 튜닝 박사에게 되묻고 싶다. 누군가 정의해주지 않는 이상 기계는 자신이 기계인지 사람인지 조차 구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기계는 사람이 만든다 이것은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