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Film

<펀치 드렁크 러브> 천재의 영화는 이런 것

 

 

 

 

 

영화에 관한 글을 쓴지 참 오래되었다. 손가락으로 기록되는 활자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사라져가는 감정의 잔상을 잡으려는 짓도 오랜만이다. 난 뭔가 봤고 그것을 기억하고 싶은데 그게 이젠 쉽지 않다. 나이를 먹은 탓인가. 기록하지 않고 돌아서면 내가 뭘 봤는지 잊어 버린다. 큰일이다. 농반진반 이런 와중에도 사라지고 있다.

 

 어렵사리 상업영화 연출부를 한 편 끝내고 저예산 장편영화 연출부 일을 하다 엎어지고 또다시 막다른 골목 앞에서 구역질을 하던 찰나. 문득 <펀치 드렁크 러브>가 보고 싶어졌다. 이유? 있다. 천재가 되고 싶으니까! 이런 생각하는 분들이 사실 살리에르의 삶을 살다 뒤지기 십상이지만 가끔 참된 노력의 끝에 진정한 거장의 길로 들어서는 인간들도 간혹 있다.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뭐 거창해 보이는데, 사실 대한민국에서 상업전선 감독들을 제외한 영화를 찍는 다는 풋내기 들 중 내 수준이 어느 정도냐면 단편영화를 만들어 영화제에 출품하면 600~700편의 경쟁작 중 아주 우연히 가뭄에 콩나듯 본선상영작에 올라가는, 아주 조금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쉴 정도로 영화를 만드는 놈이다. 물론 난 구로자와가 말했듯 상은 영화를 위함이 아닌 영화를 만드는 인간을 위한 것이라던 그 위안과 용기를 단 한번도 느끼지 못했다.

 

좀 우울해 진다.

 

그렇다. 내가 정말 잘 나갔다면 천재가 만드는 영화를 몰래 훔쳐보며 그들의 인터뷰와 그들이 쓴 영화에 관한 글을 뒤지며 그들의 생각을 고스란히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리려고 하는 고로 내것 이라곤 그 어디에도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실력에 탄복하고 비분강개하며 질투의 화살을 쏘아 붙이다 어느 순간 작품 반복 감상의 도가 지나쳐 이건 내가 찍은 영화야 라고 스스로 최면에 거는, 이런게 잘 못 되면 내 의도와는 다르게 표절에 이를 수도 있으면서도. 헐리웃 키드로 죽긴 싫다 외치며. 한 술 더 떠 그렇게 한다 해도 오마주로 둘러 댈 정도의 실력은 있다. 라며 사기칠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한심할 노릇이다.

 

더 우울해 진다.

 

두번째 이유는 일전에 작품을 함께했던 조명팀의 양모군과 영화에 관한 수다를 떨다 자신은 PT앤더슨의 영화중 펀치 드렁크 러브를 무척 좋아한다는 말이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덧붙이며 그보다 더 최고의 감독은 소노시온 감독이라 했다. 왠만한 감독들 알고. 그래 어느 정도 영화사도 꾀고 있고 일본영화 역시 좋아한다지만. 소노시온이라는 감독은 아는 척 하기엔 좀 거리가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너 이영화 봤니?'라며 어린 것들이나 하는 영화 경쟁심 따윈 안느끼려 했지만 명색이 연출부가 꿀려선 안된다는 생각에 '아 소노 감독...나쁘지 않지 나쁘지 않아. 그보다 난 신지 감독이 더 좋은 것 같아. 아오야마 신지 말야'라며 생뚱맞게 결국 이름 비슷한 아는 감독을 끌어 들이기에 바빴다. 그러자 그 친구는 소노감독을 어떻게 아느나며 펄쩍 뛰며 내 팔을 잡는 것이었다. 화제를 바꾸려던 나의 꼼수에 아랑곳 하지 않던 그는 현장일을 하며 단 한번도 소노 감독을 아는 사람을 만난적이 없었는데 역시 형은 좀 안다며 즐거워 했다. 물론 그건 나의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PT앤더슨에 대한 이야길 나눈 탓이었다. 특히 앤더슨이 영화의 문법을 포르노에 배웠다는 말을 해줬을때 그의 표정을 보고 '내가 또 한건 올렸군'라며 만족했으니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격려도 잠시. <러브 익스포져>를 보았냐는 얘기로 넘어갔다. (이 영화는 소노시온 감독의 2008년도 작이다.)여기서 잘 넘어가지 못 하면 본전도 못 건진다는 생각에 "나쁘지 않았어" 라는 말을 연발했다. 상황이 애매하고 난처할 때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를때 아는척 하려고 내가 자주 쓰는 말이다. "나쁘지 않았어." 부정도 긍정도 아닌 어떤 뭔가... 적절한 중간지점의 말로 생각했던 것이다. '좋았어' 라고 단정지으면 왜 좋은지에 대한 썰을 풀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좋은 것을 공유해야 한다. 그리고 별로라는 말을 하면 왜 별로인지 이유가 동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는 말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는 말로 그 말속엔 "그러니 이제 다른 얘길 하는 건 어때?"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나의 의도는 생각지도 않은 체 영화의 장면 묘사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내가 불리해 진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화자가 하나의 장면을 묘사하기 시작하면 청자는 다른 장면에 대한 얘기나 동일 장면에 대한 다른 감상을 얘기 하는 게 이 대화의 패턴이기 때문이다. 이를 태면 이런것이다. "형. 영화 초반부에 배니가 전화기를 들고 자기 머릴 때리며 춤추는 장면 죽이지 않아요?" 라고 하면 상대방이 꼼짝도 못 할 "배니가 그때 너무 좋아서 침을 흘리더라 난 그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침이 조명에 반사되서 반짝이는 목걸이 처럼 느껴졌다니까." 라는 식의 니가 그 장면에서 못 본 디테일한 것을 난 끝끝내 보고야 말았으며 지금 이순간에도 기억하고 있노라 이것아! 라며 일종의 영퀴경쟁에서 승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정성일이 듣는다면 눈깔 뒤집힐 일이겠지만. 이래야만 "정말 나 이영화 본거 맞아"라는 증언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나처럼 아는 척 해놓고 바보 사기꾼이 되기 싫다면 그냥 듣고만 있어서도 안된다. 그렇다면 상대방이 날 의심하게 된다. 왜냐면 대부분의 영화광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할땐 입에 거품을 물기 때문이다. 백이면 백 그렇다. 그럴 땐 어쩔 수 없다. 상대방이 긍정한 대상에 대해 더 강력한 미사어구를 붙여줘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입도 크게 벌리고 박수를 치며 "맞아 환장하는 줄 알았어" 혹은 "그 춤 정말 끝내줬지 아직도 생각나" 따위의 말을 하면 적당히 수숩은 된다. 어느정도. 물론 이건 엎지른 물을 걸래로 닦아 다시 컵에 짜내는 과정이다. 찝찝하다.   

 

난 물론 그러지 못했다. 그 친구가 예상외의 말을 꺼냈기 때문이다. 4시간이 진짜 금방 가더라구요. 난 이때 실수를 했다. "뭐? 네시간?" 잘 못 본거겠지 4시간이라니." 난 단호하게 말했다. 일본영화 감독이 4시간 짜리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는 그 영화에 미츠시마 히카리가 나온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녀는 데쓰노트에 나온 상업영화 배우다. 하지만 4시간 짜리 영화라면 분명 아트영화일 진데 내게 4시간과 미츠시마 히카리는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 였다. 난 여전히 반복해서 4시간을 부정했고 필시 시간을 잘 못 본 것이겠지 장담했지만. 아뿔사. 난 방심했었고 우리의 손에 들린 스마트 폰이 단 10초만에 나의 오류를 정정해 주었다. 그리고 난 아무말 도 할 수 없었다. <러브 익스포져>는  237분 즉 3시간 57분 이며 4시간에서 고작 3분이 모자른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가 맞았다. 아는 척하다. 걸린 것이다. 난 말했다. "니 말대로 4시간이 금방 갔었구나 나도" 결국 승리의 깃발을 빼앗긴 한마디를 던져야 한다. "몰랐네"

 

우울한 얘긴 그만하자.

 

  

 

 

 

PT앤더슨이 이야기로 넘어오자. 앤더슨은 매그놀리아때 처음 그 천재성에 탄복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내 나이 20살 때였다. 10대때 빨간딱지 붙은 부기나이트가 있었지만 보지 못했었다. 당시 난 영화에 대해 좃또 모르면서 영화과에 들어가겠다고 재수를 했더랬다. 친구와 함께 독서실안에 있는 휴게실에서 놀아도 독서실에서 노는게 맘편하지 않냐며 상.하편으로 되어있는 비디오를 틀어 보았다. 어린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런닝타임이어서 힘들게 보았는데. 내 앞에 앉아있는 친구에게 그래도 나 영화 하려고 하는데 재미 없다고 하면 상도 받은 영환데 영화를 볼 줄 모른다 생각할 까봐. 음 의미심장한 영화군...하고 애둘러 말했던 기억이 난다. 한참 뒤에 다시 보고 그 영화적 감흥을 뒤늦게 알아채긴 했지만 말이다. 당시에 난 로버트 알트만도 몰랐던 때였다. 그야말로 영화에 관해선 스필버그 단 한사람이었다. 때문에 매그놀리아는 무척 생경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배우들이 노래는 또 왜불러 갑자기 개구리 비는 왜 떨어져. 제기랄 의문 투성이군...라며 보고 또 보았다. 계속 보면 언젠가 알겠지 라고 말이다. 고등학교때 자주 매를 들던 수학선생이 어떤 어려운 책이든 10번 읽으면 다 알게 되어있다는 다소 정치적 발언을 염두해 두며 10번을 보았다. 재수생은 그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 큰 도움이되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영화는 쓰레기 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근데....서두를 이딴 식으로 길에 풀어내면 30분전 봤던 영화의 잔상이 사라져 버릴 것 같다... 

 

무슨 말을 하지?

 

 이 영화 무척 살갑다. 나도 누나가 한명 있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속에 왜 화를 내는지와 누나는 배니에게 왜 이러는지와 개봉당시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어떤 동질감을 느끼고 말았다. 난 누나 때문에 아직까지 여자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에 착한 여자는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는 강박 관념은 바로 집에서 보이는 히스테릭한 누나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나의 사랑이 과연 여자와 성립 가능한 것일까 의문스러웠고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녀의 절대적 동의를 얻어야지만 그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라는 것은 아마도 상대방이 나를 귀찮게 여기지 않을까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누나는 늘 나를 귀찮아했으니 말이다. 누나는 늘 자기말만 늘어놓고 내가 말을 할때면 자기 할일에 신경을 쓰기 바쁘다. 늘 답답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사소한 나의 말이나 행동에 너무 심하게 짜증을 내고 성질을 부리기도 했다. 난 그런 모습이 도대체 낮설어 나도 화를 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당황스럽다가 결국 폭팔하기에 이른다. 도대체 이유를 모르니까 말이다. 왜 나한테 이러는 것인지 말이다.

 

학창 시절을 누나와 어렵사리 보내고 20대 후반 부터는 오랜시간 떨어져 지냈다. 학교가 집에서 멀어 기숙사 생활을 했던 탓도 있고 2년2개월의 군생활과 재대할 때 즘 진행된 누나의 긴 유학생활 때문에 거의 6년 가까이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불현듯 누난 결혼을 하겠다며 외국인 남자친구를 집으로 대려왔다. 외국인 이라지만 생김세는 동양인이었다. 중국계 미국인 이란다. 오. 하나님. 나 영어 못하는데 매형과의 대화는 간단한 인사와 재밋게 본 미국 드라마에 관해서 말고 심도있는 이야길 나누긴 힘들었다. 허나 대화가 안되니 무척 상대방에 대해 배려를 많이 하게 되는 듯 싶다. 잘 모르니까.

 

아무튼 누난 미국에서의 새 삶을 시작했고 1년 뒤 귀여운 조카가 태어났다. 그리고 난 그로 1년 뒤 2012년 3월 한달간 미국 횡단계획을 세운다. 고되고 고된 연출부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떠다려던 심산이었던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엔 누나가 뉴욕엔 대학 졸업식을 3개월 앞둔 사촌동생이 살고 있으니 횡단하기 딱 좋은 여건이었다. 난 질렀다. 그리고 비행기게 몸을 실었다. 누나역시 날 너무나 반갑게 맞이했다. 둥지를 미국에 튼 이상 죽을때까지 별 볼 일 없을 테니 과거에 서로 사이가 어쨌건 잘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일었나 보다. 나 역시 무슨 일이 있어도 누나와 싸우지 말고 혹시 감정이 일이 일어도 꾹 참고 삼켜버리자라는 굳은 결심을 하였다. 하지만 3일이 지나고 누나에게 나의 횡단 플랜을 공개하자 그녀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사전에 왜 자신에게 말을 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누난 내가 조카 돌보고 누나의 개인 시간을 갖게 끔 도와줄 줄 알았나 보다. 한달 동안의 보모 노릇 말이다. 하지만 내가 고작 조카랑 놀아주려고 귀한 시간과 돈들여 가며 미국까지 왔을 성 싶은가. 누나는 역시나 그 당황스러움을 히스테릭함으로 해소한다. 내가 각 도시의 숙소와 국내선 비행기 표를 알아보고 있을 때 옆에 와서 여행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넌 영어도 못하니 어디가서 빌어먹지도 못할 것이며 미국이란 나라는 무척 위험해서 잘못했다간 흑인들한테 삥뜯기기 쉽다며 온갓 악담을 퍼붓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도가 지나칠 정도로 말이다. 난 이미 유럽과 홍콩, 캐나다에 여행을 한 경험이 있는 몸인데 여행이 뭔지는 알만큼 안다고 강조했지만 미국은 다른 나라라며 겁을 주기 시작한다. 머리가 지끈 거릴 정도로 쏘아 붙이는 누나의 말 때문에 속에서 울렁증이 일었지만 참았다. 처음했던 다짐을 되세기며 절대 화내지 말자라고 말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누난 나름 명문대를 나와서 미국서 대학까지 나왔는데 지금 집에서 애나 보고 있으니 그동안 공부했던 것이 무척 아까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대로 라면 평생 자신이 주부로 살아아 한다는 운명 때문에 우울 했을 수도 있다. 그 불안함. 자식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새로운 변형. 그 낯설음 이해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이번이 지나면 어쩌면 또 언제 볼지 기약이 없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에게 가서 뒤져버리라는 악담을 퍼붓다니 말이다. 난 결국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대신 아주 점잔케 이성을 찾아가며 "누난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내가 누나한테 잘 못한게 뭐야?" 난 이 질문을 계속 던 졌다. 누난 이성은 옆집 멍멍이 해피한테 던져 줬는지 "가서 뒤지든 말든 내가 알바 아니다" 라며 방을 나갔다. 문득 내 옆에서 아이폰을 들고 장난치는 조카 에이미가 불쌍해 보였다. "에이미 강건해야 된다."   

 

 

 

영화의 첫장면, 이 영화는 줄 곳 동일한 광각랜즈 구성으로 샷을 만들어 나간다.

화면이 심하게 외곡되어도 말이다.

 

 이 영화는 애덤의 연기가 훌륭하기도 했지만 영화를 이렇게 찍는 다는 것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말로는 표현 못 할 엉뚱함과 낮선 상황들이 즐비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감정들이 체 정리되기 전에 더욱 큰 사건들이 번지면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며 격는 이를태면 여자친구와 침대에서 사랑을 나눌때 울리는 엄마의 전화나 어른스러워야 될 상황에 아빠와 전화통화를 해야만 하는 상황들이 있다. 사회에서의 모습은 분명 집에 들어가면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가족에게 보이는 모습은 대부분 숨기고 싶은 어떤 것일 경우가 많다. 어렸을 적 어느 순간 엄마와의 대화가 단절 됐던 기었이 있는데. 이유는 이러했다. 초등학교 들어와서 바지에 오줌 싼 사건을 이모들한테 다 얘기 한 것이다. 나이 먹고 생각해 보면 당연히 웃으며 어른들 끼리 얘기하는게 당연한 것이었을 테지만 당시의 난 엄마한테 너무나 큰 배신감을 느꼈었다. 이제 그 어디에도 나의 비밀을 말하거나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이후에 나의 작은 실수들이 낱낱이 이모들에게 보고 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더욱 엄마와의 대화는 줄어 들었던 것 같다. 분명 사건 당시 엄마는 내가 오줌 싼걸 남들이 모르게 감싸주고 위로해 주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암묵적으로 둘만의 비밀이 될 것 같았던 것들이 어느 명절 날 이모들의 입을 통해 내 귀로 흘러들어 올때 느껴지는 상실감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카메라는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기 못하는 방식으로 씬을 연결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인물을 움직이며 전혀 예상하기 못한 방식으로 샷을 구상한다. 광각의 랜즈로 외곡된 화면을 감수하면서도 심도를 조절 할 때에 화면의 광학적 사이즈가 변함을 알면서도 뚝심있게 배리를 화면안에 품으려 한다. 집에서 폰섹스를 할 때에 카메라는 배리를 따라 계속 움직인다. 공간을 계속 훑는다. 이러한 방식은 ........ 베리의 아니 씨발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영화가 내 머릿속에 정리가 되기 나 한가. 경배는 집어 치우자. 난 PT에게서 훔쳐낼 것을 찾아야 한다. 앤더슨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스타일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스콜세지와 조나단 드미와 타란티노와 70-80년대 포르노와 TV쇼 타큐멘터리 에서 가져왔음을 고백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는 말한다. 오히려 내가 더 셈세하가 잘 정리하여 표현하였다고 말이다. 난 앤더슨의 이런 점 마져도 맘에 든다.   

 

<펀치 드렁크 러브> 어차피 눈물 흘릴 정도의 감동은 아니고 영화적으로 훌륭한 연출이 너무 많아서 정리를 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어디선가 앤더슨이 말하는 것 같다.

 

 "영화는 이렇게 찍는거야. 씨바."

 

그래 알았다.

 

기억해 줄게 지금부터

 

 

 

 1. 감독의 시선처리 방식

 

일반적인 경우 배우가 어딘가를 바라보고 그 어딘가를 더욱 가까이 따고 들어 갔을 때 

주인공이 가만히 서서 본다면 따고 들어간 샷도 대부분 움직임이 없다. 결국 그의 시선으로 보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선 카메라가 움직여 베리가 서 있는 지점에서 볼 수 없는 각도까지 틀어서 보여준다.

이때 관객은 대부분 베리가 걸어가고 있는 중이고 그의 시점 샷으로 도로를 바라본다거나 

혹은 프레임안으로 언젠가 베리가 들어올 것이라고 짐작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앤더슨은 기존의 규칙성을 과감히 버리고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 라고 단정 짓는다. 

 

 

 

전화를 받던 배리가 이상한 소리에 밖으로 나와 문득 창고 입구를 바라본다. 

하지만 주면은 무척 고요하다.

다음 장면

 

 

 베리가 바라보는 시선방향에서 창고의 입구를 좀더 가까이 다가가 보여준다. 동일한 렌즈 구성.

여기서 관객은 베리가 입구까지 걸어왔고 그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듯 느끼게 한다.

카메라는 컷을 나누지 않고 입구를 지나쳐 왼쪽으로 각을 틀어 도로를 보여준다.

밑의 앵글까지.

 

 

 여전히 고요한 새벽이 기운이 느껴지는 가운데 난데 없이 차한대가 뒤집어 진다.

물론 엄청나게 큰 사운드 효과음을 내면서 프레임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베리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앞에 제시된 시선은 베리가 아니라 감독의 시선이었다.

이점이 굉장히 중요하다. 앞으로 난대없이 주인공이 바라볼 수 없는 각도로의 시선 제공은

더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즉 이것은 영화의 주제의식이 담겨진 핵심 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핵심 모티브 바로 미니 올겐 등장이다.

엉뚱하게 난대없이 등장한 다는 것에 유념하라. 

이 올겐은 영화가 끝나는 내내 도대체 왜 누가 그날 새벽에 배리의 앞에 두고 갔는지

알 수 없다.

 

 

베리는 올겐을 바라본다. 다가가지 않는다. 

베리는 앞으로 이와 같은 낯설음과 엉뚱한 일들에 휩싸이게 된다.

올겐을 통한 주제의식을 이미지로 형상화 함.

그리고 우린 이야기를 진행시켰던 올겐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2. 사운드와 이미지의 충돌 그리고 매치

 

베리가 사랑에 빠지는 레나가 등장하고 카센터가 문을 안 열었던 탓에 배리에게 차를 맏긴다.

그리고 별 이유 없이 입구에 피아노가 있다는 말을 남기고 배리를 떠난다.

이 작은 파장 속에 배리는 길에 떨어진 피아노를 주워오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어떻게 연출 하였는지 보자.

 

 

 

둘이 처음만나 얘길 나눈다. 레나는 배리에게 차키를 넘겨주고

피아노가 입구에 놓여있다는 말을 엉뚱하게 남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미 배리는 레나가 올 것 을 알고 있는 듯 했고

레나 역시 누나의 소개팅 이전에 이미 배리의 존재에 대해 알 았을 듯 싶다.

왜냐면 배리의 부하 직원을 통해 그의 양복이 매일 입는 옷이 아니라는 언급을 하기때문.

옷을 차려입었다는 건 누군가 오길 기다렸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래의 장면은 이어지는 한 컷 구성이다.

 

 

레나가 걸어가다가 베리를 힘끔 쳐다본다.

이 지점은 이후에 베리가 올겐을 들고 오다가 입에 물고 있던 텀블러를 떨어트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위의 두 컷은 하나의 장면.

레나와 눈이 마주치자 금세 고개를 돌려 커피를 마신다.

 

 

잠시 배리를 비추고 있던 사이 레나는 금세 창고 입구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올겐을 지나쳐 완전히 화면 밖으로 빠진다.

 

 

베리는 레나가 사라지고 나자 황급히 자신의 몸을 어둠속으로 숨긴다.

자신의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은 부끄럼 때문에...

다소 밋밋한 감성을 가진 관객은 여기서 베리가 사랑에 빠진지 잘 모른다.

대부분 얘 왜저러냐...싶을 것이다.

 

 

한참 뒤 레나가 혹시 없을까 싶어.

빼꼼 그녀가 지난 자리를 바라보는 배리.

불론 그녀는 이미 가고 난 뒤다.

 

 

장면은 점프하여 롱 샷 정면으로 배리가 피아노 앞에 서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전히 주변을 살피는 것이다. 왜냐면 물건을 두고간 이들의 의도가 있을 성 싶어.

이것을 내가 건드려도 될까라는 두려움이 일었던 것. 

내가 이 물건을 가져도 되는 가 라는 생각들..

복잡한 심경...

 

 

동일한 싸이즈로 이번엔 왼쪽 측면. 

배리의 우측편에 아무것도 없음을 보여준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차 한대 다니지 않고 조용하기만 하다.

 

 

이번엔 배리의 우측 측면.

그의 오른쪽에도 별 움직임이 없어보이지만.

아주 멀리 덤프트럭 한대가 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소리는 트럭의 존재를 숨긴다.

 

 

다시 샷이 처음의 위치로 돌아왔을때 베리가 뭔가를 결심하려던 찰나.

커다란 굉음과 함께 덤프트럭이 화면 한가득 베리를 덥칠듯 다가온다.

이때 관객은 고요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트럭때문에 놀라며 동시에

아주 짧은 순간 차에 치이는 것은 아닐가 라는 아찔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일 뿐이며. 

배리가 트럭에 몸이 가려진 찰나

장면이 바뀌면

 

 

순간 리버스 샷은 망원으로 거리의 깊이감을 최소화 시킨다.

트럭은 아주 바른 속도로 배리를 지나쳐 가고

배리는 거의 동시에 올겐을 들고 정신 없이 자신의 창고로 뛰어간다.

그리고 지나가는 길 레나의 차를 지나칠 때 그 차를 바라보다

실수로 텀블러를 떨어트린다.

 

쉽게 표현하면 이런 것일 터. 우리가 공공 장소에서 방구를 뀌고 싶을 때 시끄러워 질 순간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지하철이 운행 중일 때 방구를 뀌지 절대 멈춰있을 때 뀌지 않는다. 그러면 큰일 난다.

위의 것은 사운드의 의도적인 충돌이었다면.

 

밑의 장면은 점심시간 베리가 이미 사랑에 빠지고 난 뒤 그녀가 두고간 자동차가 제대로 수리될 것인가

염려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베리는 카센터 인부들 다리사이로 그 차를 바라보고.

화면으로 스치는 인부들의 발걸음마다 음의 변화가 일어남을 알 수 있다.

스틸 화면인지라 어찌 설명할 도리가 없다. 저 인부들이 한 걸음을 띨 때마다 음의 변화도 일어난다 정도만.

화면안에 이미지의 움직임과 음의 변화는 일반적으로 뮤직비디오에서 많이 쓰이지만.

간혹 영화에서도 자주 쓰인다. 최근 영화 어벤져스에서도 악당놈이 무도회장 덥칠때 그런 효과가 사용되기도...

문득 기억나는 좋은 예는 마이클 니콜스의 <클로져>에서 클라이브 오웬이 사무실에서 주드로가 여자인줄 알고 음란체팅 할 때 역시 사용되었다. 펀치 드렁크보다 더 훌륭하게 말이다. 

 

 

 

 

3. 와이드와 클로즈업의 융화

 

아래의 장면은 새롭다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컷 연결이다.

와이드한 샷에서 클로즈업으로 이동하는 샷의 조합을 좋하한다.

대신 어울리지 않을 듯한 두개의 샷이 붙으려면 일종의 심리적 화학반응이 일어야 한다.

무슨 말이냐. 프레임 안의 인물이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관객들 역시 궁금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면을 보자.

 

 

 

와이드 앵글로 마트의 풍경을 평면으로 묘사 갑갑한 느낌을 자아낸다.

냉장실에서 뭔가를 꺼내 바라보는 배리

 

 

다음 숏트는 500마일리지 쿠폰이 붙은 냉동 데리야끼

이 영화에서 올겐다음으로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한다.

처음과 두 번째의 장면이 자연스럽게 붙을 수 있는 것은

냉장실에서 물건을 꺼낸 배리의 시선과

첫 샷의 지속 시간이 다음 컷트를 예비할 수 있는 여유를 주었기 때문이다. 

샷의 전환은 일반적으로 인물을 시선을 따라간다.

정확히 말하면 인물의 감정을 따라간다.

 

 

마지막 장면은 평범한 샷엔 리버스 장면.

영화에서 인물이 손에든 뭔가를 바라볼때

대상을 바라보는 인물을 표정을 잡기위해 로우 앵글로 잡는다.

가장 자연스러운 장면 전환이다.

즉 첫 컷트의 충동을 이후 익숙한 장면 전환으로 무마시킨다.

앤더슨의 능숙함 노련미에 박수를

 

4. 객관적 시선에서 주관적 시선으로 전환

 

이후에 구성된 샷의 구성도 재미있지만 스틸로는 설명하기 힘든 것이어서 넘어간다.  

아래의 상황은 마트에서 집으로 온 배리가 신문에 난 폰섹스 광고를 보는 장면이다.

총 4개의 커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배리가 집안 공간을 돌아다니며 전화를 하는 모습이 주된 내용이다.

결국 카드결제를 통해 폰섹스 하는데 성공한다. 이하의 장면은 본 영화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배리의 외로움을 극대화 시킨 잘 된 연출의 좋은 예이다. 굉장히 독특한 카메라 움직임을 보인다.

 

 

상품에 붙은 쿠폰을 오리다 문득 폰섹광고를 보게 된다.

클로즈업 베리의 시선

다음장면

 

 

전화를 거는 베리, 그리고 창문을 블라인드로 가린다.

이러한 행동은 이미 베리가 방금 전 봤던 광고의 여파 행위라 볼 수 있다.

은밀하게 전화를 걸기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카메라는 지금의 위치에서 고정되고 베리의 움직임에 따라 좌우로 팬만 한다.

 

 

현관문 쪽으로 걸어가서 문또한 잠근다.

전화가 다시 걸려와 사이즈가 좁아 질 때까지 롱테이크로 진행된다.

이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준비가 끝났다.

 

 

이런 자신이 좀 낯설었는지 안절 부절 못하며 집안 여기저기 계속 돌아다니며 전화를 받는다.

인물 동선에 따라 배리가 사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독특한 것은 혼자 사는 집에 세명이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이 있다는 것이다.

아래의 장면을 보자

 

 

비어 있는 배리의 공간, 어색할 정도로 큰 테이블 그리고 늘 혼자서 식사를 한 듯한 좌측의 식탁보 설정.

집에 왔지만 밖에서 입던 옷을 아직 갈아입지도 않았다.

카메라는 배리를 프레임 좌측으로 밀어 넣더니 갑자기 팬하여 배리를 우측으로 몰아 넣는다.

카메라가 움직여야 될 하등의 이유가 없이 이동한다.

이것은 우리의 시선을 더욱 은밀하게 작용시킨다.

즉 배리의 동선을 따르던 카메라가 배리가 그 움직임을 멈춘 순간

같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옆으로 이동시킴으로

누군가 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마치 배리가 사는 집에

그와 함께 앉아있는 것 처럼 말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배리는 집 공간을 한바퀴 돌도 다시 자리 에 앉는다.

 

 

결제를 마치고 전화를 끊고 폰색할 대상에게 걸려올 전화를 기다리는 장면이다.

이번엔 처음보다 더욱 코너로 몰린 배리의 위치를 볼 수 있다.

그리고 화면은 또다시 팬하여 배리를 다른 반대쪽 코너로 몰아 붙인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주관적인 움직임 으로의 전환이며

이러한 움직임은 배리를 더욱 객화 시킨다.

 

 

 

더이상 얘길 하기 힘들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더 업데잇을 해야겠다.

그전에 몇가지 생각나는 걸 간단하게 정리를 하면.

 

5. 누나가 직접 레나를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 왔을때 공간의 의도적 소란 스러움. 누나가 잠시 빠진 사이 둘의 대화가 측면 와이드에서 오버더 숄더 샷으로 전환 되고 다시 누나의 등장 할땐 레나의 뒤에서 포커스 아웃된 상태로 재 등장. 이후엔 리버스로 카메라가 누나의 미디움 샷으로 사무실 내부로 따라 들어간다. 

 

6. 레스토랑에서 나올때 덤프드럭과 함께 걸어나오는 길고긴 어색한 장면 문열고 나서

다음 운전 장면에서의 클로즈업 장면.

 

7. 하와이 키스 장면. 와이드 정면에서 측면 실루엣 풀샷 지나다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

 

8. 호프만 사무실 등장에서 카메라가 리버스로 들어가는 연속된 컷의 편집. 그의 영화에서 아주 많이 쓰이는 방식

 

정리하고 나니 굳이 캡춰해가며 포스팅할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나혼자. 기억하면 그만이니까.

간만에 폭풍 포스팅을 마친다.

 

 

 

앤더슨 감독과 아담 샌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