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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이와이 슌지의 신작, 서글픈 <뱀파이어>


이와이의 귀환


글쓰는 일에 너무 지쳐있었던 걸까. 영화를 보고 글로 정리하는 일에 심한 피로감이 밀려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뭔가를 쓴다는 일, 머릿속의 이미지들을 활자로 정리하는 일들에 권태를 느끼게 되자 가슴속의 감정들을 옮기는 과정도 꾀나 힘든 일거리가 되고 말았다. 지금도 역시 상당히 피로하다. 하지만 이건 기록해야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와이의 영화를 봤으니까 말이다. 


친한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형, 인터넷에 이와이 슌지 뱀파이어 떴던데.' 순간 난 한달째 진도를 나가지 못하던 시나리오를 잠시 멈출 핑계거리를 찾게 되었다. 당장 P2P싸이드에 접속을 해서 다운을 받은 것. 5분뒤 난 그토록 기다리던 뱀파이어를 짧은 전화 한통화에 다시 보았다. 


우선 이 영화에는 이와이 슌지 말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이와이의 페르소나 아오이 유우도 등장한다. 하지만 유우는 주인공이 아니다. 조연도 아니다. 물론 이야기 구조상 중요한 연결 고리를 갖긴 하나 그 역할은 유우가 아니어도 심지어 내가 거기 들어가 있어도 전혀 상관없는 그런 역할이었다. 때문에 무척 아쉬웠다. 조금만 더, 제발 조금만 더 이야기를 해주길 바라며 기다렸지만 유우는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았다. 


이 글은 영화에 자체에 대한 글이라기 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이와이 슌지에 대해 들었던 감정들을 기록한 것이다. 






1. 촬영감독의 죽음 뒤 찾아온 공허함


우선 나의 추측, 오랜시간 제대로된 작품활동을 하지 않은 건 순전히 이와이의 미학의 8할을 담당했던 시노다 노보루의 죽음이었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왜냐면 당대 최고의 스토리텔러와 디지털 미학의 진보와 실험정신으로 뭉친 시노다 노보루의 궁합이 일본 영화계에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 냈으니까 말이다. 그들에겐 암묵적 동조가 있었다. 서로가 아니면 안된다고 말이다. 이와이는 시노다가 없었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뿐만아니라 그가 죽었을 때 이와이는 식음을 전폐하고 한동한 칩거 생활을 했다는 전언도 있었으니 이정도면 둘사이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만 하다.

 

정말 좋은 카메라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고장나 버렸다. 이때 우린 같은 걸 새로 사면 된다. 바꿀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촬영감독 시노다는 이와이 슈운지에게 바꿀수 없는 독보적인 유일 무이한 어떤 것이었다. 


이전에 이와이에 대해 쓴 글에도 기록을 하였지만 이와이는 그 뒤 한동안 장편영화를 찍지 않았다. 다큐 두 편과 단편하나 그리고 세편의 시나리오를 썼다. 이정도면 알 것이다. 창작활동이 요상하게 다른 쪽으로 뻣어 나간다는 것이다. 분명 뭔가를 만들어 내고 있지만 장편영화라는 완전체를 만들어내고 있진 않았다. 이와 같은 반응은 분명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고 새롭게 나아가야할 자신의 영화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이와이를 얼컬어 이것저것 할 줄 아는게 많다고 만능 아티스트 따위의 수식어를 붙여주니 그도 덩달아 자신의 세계를 다른 장르로 치환하여 확장시키고 있었다. 정면대결은 잠시 보류했던 것이다.

 

창작 활동을 계속했지만 자신의 영화는 찍지 않았다. 이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가 왜 갑자기 이치가와 곤에 관한 다큐를 찍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본다면 내 생각은 이렇다.


2. 다큐로 워밍업하다.


자신을 되돌아 보는 처음부터 자신의 영화세계를 점검해 보는 일련의 작업. 복습의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영화에 관한 짧은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취향과 영화관에 밝히긴 했으나 그 구체성에 대해선 미스테리로 남아있었다. 그러니까 이와이 슌지는 다큐에서도 직접 밝히듯 자신의 근원인 이치가와 곤을 만남으로 그에게 자신감을 얻고 자신이 처음 영화를 하기로 결심했던 그때의 기분을 되새기며 그 과정을 통해 대중들에게 자신의 미학이 아직 견고하며 그 정통성과 깊이가 있음을 곤 할아버지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 게다. 


왜냐면 분명히 이와이는 자신을 폄하하는 세력들 즉 시노다 촬영감독이 그의 미학을 완성시켜주었으니 그의 죽음과 더불어 이와이 월드는 이제 막을 내린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기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이전처럼 영화를 찍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안티들의 이야기가 사실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이와이의 영화 세계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는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는 것이다. 아주 조심스럽게 말이다. 


생각해 보라 앞으로 이전처럼 영화를 만들어 낼수 없을때 오는 그 박탈감이 얼마나 클지 말이다. 누누히 말했지만 카메라가 부서지면 같은걸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면 그를 대체할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3. 주변 지인들을 챙긴다.


 다큐를 찍은 뒤 이와이 자신은 자기가 이제 더이상 영화감독에 머무르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제작자가 되어 무지개 여신처럼 자신의 회사 피디를 데뷔시키기도 하며 평소 친하게 지내던 감독에게 자신이 쓴 각본을 줘서 영화를 찍게 하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들은 그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다독이는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도 시노다의 죽음과 연관지어 생각한다면. 이제 더이상 혼자만의 욕심으로 영화을 찍어선 안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라 생각된다. 자신의 우상을 챙긴 이유도 이제 그가 살 날이 얼마남지 않았기 때문이며. 인간애적인 마음으로 그동안 자신을 위해 헌신했던 친구들에게 영화를 찍는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일게다. 사람이 변했다. 


4. 표현의 영역을 넓히다.


의도된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이와이는 다방면으로 예술적 재능을 보여준다. 집적 각본을 쓰는 것을 물론이려니와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하며 영화 뿐아니라 쓰나미로 인한 핵원전 붕괴로 일보 사회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을때도 역시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 하고 자신의 친구들을 출연시켜 환경에 관련된 작품을 찍기도 했다. 거의 모든 작품에 음악을 스스로담당하며 제작에 힘쓰고 소설을 쓰기도 하며. 기타 등등 이와이는 다방면에 재능이 많은 감독인데 그의 이러한 전방위적인 활동이 바로 하나와 엘리스 이후에 보여졌다는 것이 주목해야 될 지점이다.


스스로 영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을 어떤 시험대에 올리고 구석으로 몰아가며 채찍직을 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뱀파이어의 기본 정서가 자살을 소재로 한다는 것은 이와이가 그동안 어두운 내면을 스스로 이겨내가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기도 하다.






5. 첫 극 영화. 


그뒤 글로벌 프로젝트로 옴니버스 영화를 찍기도 했는데. 바로 뉴욕, 아이러뷰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물론 단편이기는 하나 이와이가 시노다의 사망이후 처음 다른 촬영 감독과 함께한 작품으로 그의 필모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을 가지고 있다.   


왜 중요하냐고? 보면 안다. 정말 달라졌다. 영화가. 이건 마치 왕가위가 헐리웃 진출작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를 찍을 때 도일 감독과 스케줄이 맞지 않아 다리우스 콘쥐와 촬영을 함으로 그지 같은 영화를 직조해 낸 아주 안좋은 결과와 맥을 같이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미학은 분명 180도 변했지만 슌지의 새로운 발돋음이 느껴졌다. 하지면 역시 안타까웠던 지점은 이와이 특유의 자유로운 앵글과 점프컷이 사라지고 헐리웃 전형의 구도와 카메라 웍이 사용됐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와이만의 엉뚱한 케릭터 사랑을 향항 다소 가벼운 접근 그리고 특히 엔딩에서의 강렬한 임팩트 등은 여전히 똑같았다. 


 다들 알겠지만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가 세계 무대에서 찍은 스토커, 라스트스탠드, 설국열차에 촬영감독을 전부 한국에서 자신과 함께 작업하던 감독을 데려 갔다는 사실을 보면 대충 감이 올것이다. 감독과 촬영감독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6. 새로운 촬영감독의 물색


 프로듀싱한 무지게 여신을 보면 알겠지만 왠지 이와이 슌지 영화의 느낌이 많이 나면서 뭔지 모르게 정갈한 느낌이 들었던것 말이다. 난 유심히 촬영감독을 살펴봤다. 바로 츠노다 신이치였다. 하지만 필모를 살펴보니 이렇다할 작품을 찍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이어서 제작된 이치가와곤 이야기의 촬영감독을 맏게 될때 예감했다. 자신과 함께할 촬영감독을 찾았구나. 라고 말이다. 그리고 역시나 이와이가 각본을 쓰고 제작한 하프웨이로 정식 입봉을 하게 된다. (무지게 여신에선 두명의 촬영감독이 크레딧에 올라있다.)이때 난 기쁨을 느꼈다 하프웨이에서 시노나 노보루 감독의 향취가 진하게 느껴졌고 꾀나 잘 찍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와이 스스로 츠노다 신이치 촬영감독을 시노다의 후임으로 생각하는 구나 라고 생각했다. 





7. 자신 스스로 미학을 완성하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하프웨이 다음 작품 본디지라는 작품에 그는 빠져있었던 것이다. 물론 어떠한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그리고 얼마 뒤 뉴스는 뜨거웠다. 이와이의 미국 진출작이 제작된다니 말이다. 뉴욕 시리즈를 통해 알게된 북미쪽 관계자들과의 접촉이 있었던 것일 테고 적은 예산으로 동양의 아티스트를 이용해 돈을 벌어보자는 심뽀가 잘 맞아 떨어져서 진행이 된것으로 보인다. 뱀파이어는 그렇게 제작됐다. 


그리고 이와이 슌지는 스스로 카메라를 들었다. 네이버 필모를 보면 촬영감독이름이 있지만 오퍼레이터로 판단된다. 영화상의 공식 크레딧과 IMDB자료에는 이와이 슌지가 직접 촬영을 했다고 나와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기 까지....그러니까 마지막에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까지 난 츠노다 신이치가 촬영한 것으로 생각하며 봤다 그리고 속으로 욕을 엄청했다. 촬영감독으로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노출의 문제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짜증이 났기 때문이다. 역시나 이유가 있었다. 아직 카메라에 익숙치 않은 이와이가 직접 촬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와이가 결국 그렇게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마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찾는다는 것역시 좋은 일이지만. 지금까지 각본 연출 편집 음악을 직접했던 그로서는 왜 자신이 못할게 뭐가 있냐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물론 추측이다.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와이는 이 문제는 누구에게 맏겨서 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극복을 해 나가야만 한다는 굳은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먹먹해 지며 그의 결기가 다시금 느껴지기 시작하며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이와이 슌지 다운 결심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촬영감독에 따라 자신의 미학이 좌지우지 되는 모습은 스스로도 싫었을 것이다. 화가가 스스로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듯 이와이는 스스로 카메라를 든 것 뿐이다. 




이 말은 




<뱀파이어>가 이와이 슌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완전한 미학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