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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1984.조지오웰 - 문득 학창시절이 떠오르다.




1. 몇년이 지났을까, 어림잡아..15년전 중학교에서 선생님께서 숙제를 내주셨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과 1984중 한권을 선택해서 읽어오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때의 기억이 내게 정확히 남아 있진 않다.....그래도 조금 기억을 짜내 본다면 당시 우리 학교 소위 잘나가는 학교가 아니었다...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내가 사는 동네는 잘사는 동네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바로 이때가 부모님의 경제 상황과 아이의 성적이 비례한다는 것을 일찍이 알게된 때이기도 하다. 내 누이는 그림을 그려 평창동에 있는 모예술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 나이 되면 그냥 들어가는 학교와 시험봐서 들어가는 학교가 다르다는 뻔히 잘 알 뿐만 아니라. 어머니께선는 내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 모임보다 누나가 다니는 학부모 모임에 더 열을 올리셨기 때문이다...어쨌건 내가 다니는 중학교엔 딱히 공부에 관심 있는 애들이 없었다. 물론 그중 놀라운 친구들도 보이긴 하지만..... 결정적으로 아이들은 이날 숙제를 내주신 선생님을 무서워 하지 않았다. 그 말은 그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 선생님은 여자이고 나약해 보이는 임산부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숙제를 해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렇다 할 체벌이 가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학생들에게 주게된다.... 역시나 반 아이들은 대부분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 자랑은 아니지만 난 숙제를 해왔다. 왜 기억을 하느냐 ... 그때 국어 선생님은 내게 앞에 나와서 내가 쓴 글을 읽게 했기 때문이다. 

2. 그때 난 상당히 읽기를 꺼렸다. 부끄럽게도 난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에 한몫하여 읽기 싫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난 말만했지 몸은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쁜놈은 아니니까. 

3. 내가 1984를 읽고 쓴 감상문엔 교실 맨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에 대한 뒷담화가 주였다. 
정확히 말해..그들의 학교생활을 폭로하는 글이었다. 
화장실에 누가 가서 담배를 피우며 난 그때문에 종이 치기 직전에 기다렸다 들어가서 오줌을 누고. 누가 3교시에 도시락을 까먹으며 까먹은 놈이 점심 시간엔 애들 밥을 빼앗아 먹으며 방과후 청소 안 하고 숨어있다가 담임오면 자기가 다 한척 하고 누가 일본 저질 만화책을 돌려보며 그들 중 누가 돈을 훔쳤으며 대놓고 교복을 빼았았으며 혹은 강제로 돈을 갈취하며 누가 억지로 싸움을 붙였는지....유치하게 까발렸다. 

4. 왜 그랬을 까..난 아마도 그 누가를 빅 브라더로 해석했던 것 같다....그리고 난 그 글에 몇가지를 의도적으로 누락했다.
시험기간 방대한 컨닝 커넥션이 그것이다...난 그 중간 그룹에 속해서 내 앞과 뒤 옆 세명의 일진들에게 답을 돌린다....
페이퍼가 아니다. 증거는 없다. 그 누구도 우리가 컨닝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완벽하다. 왜냐면 우린 인간의 넓은 시야각과 다양한 제스춰를 이용했기 때문이다....그리고 난 댓가가 있었다. 
보호.........그들이 어느정도 날 케어해주었다. 부끄럽다.

5. 다행이 아이들은 내 글에 관심이 없었고 난 대충 읽고 자리에 들어가 앉았다....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내 글에 재차 아이들의 태도에 각성을 촉구했지만 볼멘잔소리 일 뿐이었다....
이즘되면 내가 1984에서 말하는 이중사고를 하는 또라이임을 알게될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거짓말을 믿는다면 - 그리고 모든 기록들이 그렇게 되어 있다면 - 그 거짓말은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되는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그러나 과거는 본질적으로 변경될 수 있음에도 여태 그런 적이 없다. 이는 지극히 단순한 이치이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기억을 끊임없이 말살시키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이를 ' 현실 제어' 라 칭했는데 신어로는 '이중사고'라고 한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 진실을 훤히 알면서도 교묘하게 꾸민 거짓말을 하는 것, 철회된 두 가지 견해를 동시에 지지하고 서로 모순되는 줄 알면서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믿는것, 논리를 사용하여 논리에 맞서는 것, 도덕을 주장하면서 도덕을 거부하는 것, 민주주의가 아닌 줄 뻔히 알면서 민주주의의 수호자라고 믿는 것, 잊어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든 잊어버리고 필요한 순간에만 기억에 떠올렸다가 다시 곧바로 잊어버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 자체에다 똑같은 과정을 적용하는 것, 이런 것들은 지극히 미묘하다. 의식적으로 무의식 상태에 빠지고, 자신이 방금 행한 최면 행위에 대해서까지 의식하지 못하는 격이다. 그래서 '이중사고'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조차 이중사고를 사용해야만 한다.


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역이용했다. 글에선 도덕을 주장하면서도 난 실제적으로 도덕을 거부하고 있다. 
난 그 숙제가 분명 선생님의 손에 들어가 읽혀질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난 그들의 케어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를 하며 살아간다.....이걸 이중사고를 하는 위선자라고 말하나?
여튼 그랬다............

6. 내가 왜 1984를 지금와서 다시 읽었냐면...그건 하루키의 1Q84를 더 잼있게 읽기 위해서다.
그리고 웃기는 말이지만 15년 만에 다시 1984를 다시 읽었을때 불현듯 난 그런 느낌이 들었다.

"뭐야...내가 쓴 글 같은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까지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이 글은 정말 내가 쓴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웰이 글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가슴에 와 닿았다..혹시 감수성이 예민할때 이 책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았던 건 아닐까 생각해보지만..
그건아니다....

몇가지 가슴에 닿는 대목을 정리해봤다..
군대 있을때 고참한때 맞으면서 느꼈던 감정이기도 한데.
소설속의 윈스턴이 애정부에 잡혀가서 고문을 받을때... 
오웰은 윈스턴의 목소리를 빌려 폭력에 대한 입장을 간단 명료하게 정리했다.

"이 세상 어떤 이유로도 자기의 고통이 더해지기 를 바랄 수는 없었다 
고통에 대해 바랄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인데, 그것은 고통이 멈추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육체적 고통보다 더 못된 무엇은 없었다. 고통 앞에서는 영웅도 없다. "

이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가 내가 육체적 폭력에 대해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이 군대에서 였다.
폭력을 받는 입장은 가해자가 처음엔 원망스럽다. "할테면 해보라지..."라며 끝까지 버틸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체력이 바닥나고. 결국 가해자는 신이 된다. 오웰이 말했듯 오로지 머릿속엔 한 생각만 난다.
"오직 한 가지! 고통이 멈추는 것!" 결국 난 고참들에 대한 원망 보다는 존경과 신적인 경외감이 앞섰다.
난 폭력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또 다시 이 순간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들이 시키는 대로 뭐든 했다.........그들이 개가 되어...

그리고 후반부 윈스턴의 뒷통수를 후려갈긴 오브라이언은 그를 회유하기 위해 꿀과도 같은 말을 퍼붓는다. 
이 말이 얼마나 달콤한 말인지는 당해봐야 안다..

"여기서는 용기나 비겁함이 상관이 없어. 높은 데서 떨어지는 판에 줄을 움켜쥔다고 비겁한 건 아닐세 
깊은 물 속에서 기어올라와 심호흡한다고 비겁한 것도 아니고. 그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본능일 뿐이야." 

당하는 입장에선 이런 비유따위는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오로지 본능으로 벗어나고 싶어 안달일 뿐이다.
여기에 가해자는 회유를 한다. 논리와 비유를 적절히 대입하여 적절하게 포기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세뇌 시킨다...이쯤되면 독자들은 이 상황을 현제 한국의 상황 혹은 세계의 역사에 대입하기 마련이다..
한번 책을 다시 읽어보길 권한다....우린 폭력의 역사를 살아온 것이다........
소수의 지배속에서 언론의 조작속에서 눈가리고 아웅하고 있는게 우리 국민들이다...오웰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책을 읽으면서 내가 쓴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이 들었던 건...농담으로 '통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바로 1984에 묘사된  시대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